도쿄타워 / 에쿠니 가오리
미성년자는 아직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을 정확히 해낼 수 없고,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나이 이기에
나라가 나서서 접할 수 있는 컨텐츠에 대한 제한을 둔다.
어릴 때는 "뭐 굳이 그렇게까지...."라고 생각했던 나이지만,
이번에 도쿄타워를 읽으면서 "아 성인과 미성년자가 다르긴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예전에 아무렇지 않게 읽은 것이 분명한 이 책을 지금의 내가 읽으니
왠지 불편하고, 어색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 교복을 벗지도 않은 열일곱의 소년들과 이미 결혼을 한 성인 여성이자 사회인들과의 사랑,
그 것이 사랑임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을 면죄부로 이미 자기가 누리고 있는 가정과 일은 포기하지 않으면서, 책임과 역할은 거짓으로 수행하는 여자들이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이러한 찜찜함에도 불구하고
시후미를 향한 토오루의 사랑의 순도와 밀도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가만 가만 따라가게 됐다.
그 문장 하나 하나가 과장이 아님을 이제는 알 수 있어서,
나도 괜히 옛날의 내 마음을 돌아보게 되었다.
토오루는 모르겠지.
시후미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 영원할 것 같은 마음이 언젠가 스러질 수 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래서 자기의 퇴로는 늘 열어두는 어른이라는 것을.
에쿠니 가오리의 감각적인 장면 /감정선 묘사는 늘 그렇듯 훌륭하고
일상에의 섬세한 관조는 마음을 간지럽히지만,
그래도 이건 좀........아니야 라는 마음에
완벽히 즐기지는 못했던 책.
(그렇지만 이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책을 덮은 후 첫사랑의 흔적을 좇는 산책을 하고 왔다,)
p.9
세상에서 가장 슬픈 풍경은 비에 젖은 도쿄 타워이다.
P.10
오후 4시, 이제 곧 시후미한테서 전화가 걸려온다. 토오루는 생각한다. 언제부터였을까. 언제부터 나는 그 사람의 전화를 이렇듯 기다리게 되었을까.
p.36
"사람과 사람은 말야, 공기로 인해 서로 끌리는 것 같아."
언젠가 시후미가 그렇게 말했다.
"성격이나 외모에 앞서 우선 공기가 있어. 그 사람이 주변에 발하는 공기. 나는, 그런 동물적인 것을 믿어."
p.42
"네가 이야기하면 느낌이 참 좋아. 아주 좋은 언어를 사용하니까."
라고.
"좋은 언어?"
되묻자 시후미는.
"그래.솔직한 언어. 진실된 말."
하고 대답한다.
p.58
토오루는 드디어 자신도 자신만의 생활을 찾아냈다고 느낀다.
그것은 홀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아버지와 있을 때의 자신도, 어머니와 있을 때의 자신도,
코우지와 있을 때의 자신도 아닌, 전혀 다른 자신이 존재했다. 집에 있는 시간도, 학교에 있는
시간도 아닌, 전혀 다른 시간을 발견한 것이기도 했다. 시후미와의 시간.
토오루는 그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은 자신을 비로소 발견했고, 그러한 - 본래의 자신일 수도 있는-
자신이 마음에 들었다. 자연스럽고 자유롭고 행복했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은
' 시후미로 인하여 존재하고 있다.'
p.59
토오루는 음악을 듣는 내내, 옆에 앉은 시후미의 존재를, 녹아 내릴 듯이 뜨겁게 의식했다.
(...)
북적이는 큰길을 나란히 걸으면서 토오루 안에서는 줄곧 피아노 소리가 났다. 곡명조차 모르면서,
방금전에 들은 음 하나하나가 맑디맑게, 풍요로운 덩어리째 토오루의 몸 안에서 넘실거렸다. 무척 아름답게.
시후미와 함께 있으면 언제나 그렇다.
(...)
이것은 피아니스트의 힘이 아니라 시후미의 힘이다, 라고. 자신은 시후미가 하는대로 흘러갈 뿐이라고.
p.71
별안간 행복에 휩싸이고, 토오루는 샴페인을 마시는 것도 잊었다.
(...) 다가와서 잔을 살짝 들어올린 어머니에게서 같은 몸짓으로 답하면서, 토오루는 방금 전의 행복을,
이미 잃어가기 시작했다.
p.115
기다린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 기다린다는 것은 힘들지만, 기다리지 않는 시간보다 훨씬 행복하다. 시후미와 연결된
시간. 이곳에 시후미는 없지만 자신이 시후미에게 감싸여 있다고 느낀다. 지배당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p.120
"아쉬운 정도가 아니었지."
그렇게 말하고, 토오루를 순식간에 행복으로 뒤흔들었다.
p.169
내내 보고 싶었던 사람이 곁에 있다.
토오루는 그 사실을 맛보는 것만으로도 벅찰 지경이었다. '주말'도 '별장'도. 멀어서 실감이 나지 않는다.
줄곧 보고 싶었다. 시후미만을 생각했다. 시후미가 읽은 책을 읽고, 시후미가 듣던 음악을 들었다. 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정신이 돌아버린 건지도 모른다고.
p.185
시후미는 끼여드는 일 없이 잠자코 듣고 있었다. 이상한 느낌이었다. 시간도 장소도 알 수 없게 되어 가는 듯한.
가게 안의 공기가 바깥과는 전혀 다른 밀도에서 흐르고 있는 듯한. 도쿄며 고등학교며, 유리며 코우지는 마치 먼 이야기 속
일인양 느껴졌다. 이 세상에 자신과 시후미 두 사람만이 존재하고 있다. 토오루는 그렇게 생각하고, 거의 현기증이 날만큼
행복을 느꼈다.
p.190
말도 안되게 행복하다.
잠에 빠져들기 직전, 토오루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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